완벽해야 안심이 되는 마음은 높은 기준보다 들킬까 봐 두려운 마음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숨기느라 지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단단한 방패가 아니라 틈을 보여도 괜찮았던 경험이에요.
실수 하나가 밤새 머릿속에서 되감기는 날이 있습니다. 남들은 그 정도면 잘했다고 하는데 정작 나에게는 부족한 부분만 보이죠. 이너프심리상담센터에서 만나는 분들 가운데에도 겉으로는 누구보다 반듯하면서 속으로는 늘 긴장해 있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 긴장의 밑바닥에는 흔히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오래된 믿음이 자리하고 있어요.
이 글에서는 완벽해 보이려는 마음이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감추는 습관이 관계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그리고 작은 틈을 허락하는 연습까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완벽주의가 여러 얼굴을 가진다는 이야기를 먼저 읽으셨다면 이번 글은 그중에서도 '남에게 보이는 나'에 초점을 맞춘 이어지는 글로 생각하셔도 좋아요.
틈이 보일까 봐 먼저 긴장하는 마음
상담을 하다 보면 일을 잘한다는 평을 들으면서도 늘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한 내담자는 보고서를 내기 전에 같은 문장을 열 번 넘게 고쳐 쓴다고 했어요. 지적을 받은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모르는 것이 생겨도 동료에게 묻지 않고 밤늦게까지 혼자 찾아봤습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순간 제 밑천이 다 드러날 것 같아요." 그분에게 완벽은 목표라기보다 들키지 않기 위한 방패에 가까웠습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실수를 해도 제가 놓쳤네요, 다시 볼게요 하고 비교적 가볍게 넘깁니다. 두 사람의 능력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어요. 차이는 실수를 '고치면 되는 일'로 보는지 '들키면 안 되는 흠'으로 보는지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는 나를 관리하는 완벽주의
그렇다면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매달리는 완벽주의는 무엇일까요? 캐나다의 심리학자 폴 휴이트(Paul Hewitt)와 동료들(2003)은 완벽주의를 스스로에게 거는 기준만이 아니라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방식으로도 살펴봤습니다.¹ 이들은 이것을 완벽주의적 자기제시(Perfectionistic Self-Presentation)라고 불렀어요. 말이 좀 어렵죠?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 흠 없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쓰는 경향입니다.
휴이트는 이 경향을 세 갈래로 나눴습니다. 자신의 완벽함을 적극적으로 내보이는 것, 불완전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 것, 실수나 부족함을 말로 털어놓지 않는 것이에요. 연구에서 이 경향은 스스로에게 거는 높은 기준과는 별도로 심리적 고통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기준이 높은 것 자체와 별개로 '보이면 안 된다'는 긴장이 따로 마음을 지치게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이 긴장은 점점 커지는 흐름으로 보입니다. 2019년 영국의 두 연구자는 1989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캐나다·영국 대학생 41,641명의 자료를 종합한 메타분석을 발표했습니다.² 최근 세대일수록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완벽을 요구한다고 느끼는 정도가 높았고, 스스로에게 거는 기준이나 남에게 거는 기대보다 이 부분이 가장 크게 늘었어요. 한국 자료는 아니지만 비교와 평가가 일상이 된 환경에서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흐름입니다.
감추는 습관과 관계의 거리
완벽해 보이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듭니다. 감정을 눌러두는 일 자체에 힘이 든다는 이야기는 상담 뒤의 피로를 다룬 글에서 한 적이 있는데요, 감추는 습관은 관계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감정이 올라와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누르는 습관을 살펴본 한 연구에서는 이 습관이 강한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과의 친밀감과 지지를 덜 느끼고 삶의 만족도도 낮은 경향을 보였습니다.³ 힘든 마음을 감추는 동안 곁에 있는 사람도 나를 도울 기회를 잃는 셈이에요.
역설은 여기에 있습니다. 약점을 감추는 이유는 대개 관계를 지키고 싶어서인데, 감출수록 관계는 오히려 멀어질 수 있거든요. 앞의 내담자도 동료들이 자신을 빈틈은 없지만 어딘가 거리감이 있는 사람으로 느낀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습니다. 지키려던 관계가 방패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니 지금 지쳐 있다면 여러분이 약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무거운 방패를 들고 버텨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내가 보는 나보다 너그러운 남의 눈
틈을 보이면 사람들이 정말 실망할까요?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실수를 고백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장면을 평가하게 했더니, 사람들은 자신이 그 장면의 주인공일 때보다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할 때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⁴ 내가 나를 보는 눈이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눈보다 엄격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과 호감의 관계를 종합한 연구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대체로 더 호감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⁵ 물론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필요는 없어요. 다만 믿을 만한 한두 사람 앞에서 조금 덜 완벽한 모습을 보여도 관계가 생각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합니다.
작은 틈을 허락하는 연습
방패를 한 번에 내려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 들고 있던 방패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아주 작은 틈부터 허락해보세요.
하나, 사소한 것 하나를 모르겠다고 말해보는 것입니다. 그 뒤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차분히 지켜보면 상상과 현실의 차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요.
둘, 실수한 나에게 건네는 말을 바꿔보는 것이에요. 자기에게 친절한 태도를 다룬 한 연구는 실수 앞에서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따뜻하게 대하고, 실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임을 떠올리는 태도를 건강한 자기 관계로 설명합니다.⁶ 그럴 수 있어, 다시 보면 돼 정도의 말이면 충분합니다.
셋,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 조금 털어놓는 것입니다. 요즘 좀 버겁다는 한마디로 시작해도 괜찮아요.
마무리하며
완벽해야 안심이 되는 마음은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들키면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나를 지키려 애써온 흔적에 가깝죠. 그러니 그 마음을 억지로 없애려 하기보다 그동안 많이 애썼구나 하고 먼저 알아봐 주세요. 틈을 보이는 연습이 혼자서는 어렵게 느껴진다면 안전한 상담실에서 천천히 시작해봐도 좋습니다. 상담실에서조차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마음도 상담에서 함께 다룰 수 있습니다. 틈이 보여도 여러분은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에요.
참고문헌
- Hewitt, P. L., Flett, G. L., Sherry, S. B., Habke, M., Parkin, M., Lam, R. W., McMurtry, B., Ediger, E., Fairlie, P., & Stein, M. B. (2003). The interpersonal expression of perfection: Perfectionistic self-presentation and psychological distres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4(6), 1303–1325. https://doi.org/10.1037/0022-3514.84.6.1303
- Curran, T., & Hill, A. P. (2019). Perfectionism is increasing over time: A meta-analysis of birth cohort differences from 1989 to 2016. Psychological Bulletin, 145(4), 410–429. https://doi.org/10.1037/bul0000138
- Gross, J. J., & John, O. P. (2003). Individual differences in two emotion regulation processes: Implications for affect, relationships, and well-be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5(2), 348–362. https://doi.org/10.1037/0022-3514.85.2.348
- Bruk, A., Scholl, S. G., & Bless, H. (2018). Beautiful mess effect: Self–other differences in evaluation of showing vulnerabil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5(2), 192–205. https://doi.org/10.1037/pspa0000120
- Collins, N. L., & Miller, L. C. (1994). Self-disclosure and liking: A meta-analytic review. Psychological Bulletin, 116(3), 457–475. https://doi.org/10.1037/0033-2909.116.3.457
- Neff, K. D. (2003). Self-compassion: An alternative conceptualization of a healthy attitude toward oneself. Self and Identity, 2(2), 85–101. https://doi.org/10.1080/15298860309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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