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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일/심리상담

초가을 환절기에 유독 처지고 허무할 때: 계절을 타는 마음과 작은 돌봄

가을이면 이유 없이 가라앉는 마음은 게으름이 아니라 바뀐 계절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살펴볼 신호와 작은 돌봄을 함께 짚는 글. 박사 김기현.

#심리상담#마음건강#자기돌봄#계절성 우울#환절기 무기력

초가을에 유독 처지고 허무해지는 마음은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빛과 리듬이 바뀌는 계절에 몸과 마음이 적응하느라 애쓰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여름 내내 버텨온 기운이 선선한 바람과 함께 빠져나가는 느낌, 여러분도 한 번쯤 겪어보셨을 거예요. 이너프심리상담센터에서도 이맘때면 이유 없이 가라앉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해가 짧아지고 공기가 바뀌는 시기에 기분이 함께 출렁이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에요. 이 글에서는 계절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는 현상이 무엇인지, 가벼운 처짐과 살펴볼 신호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그리고 이 시기를 조금 덜 버겁게 지나는 작은 돌봄을 차례로 다루겠습니다.

가을 문턱에서 가라앉는 마음

상담을 하다 보면요. 9월 말부터 비슷한 이야기가 조금씩 늘어납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없는데 아침마다 몸이 무겁고, 좋아하던 일에도 손이 잘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예요. 저녁이 빨리 오는 것만으로 하루를 통째로 잃은 듯 허전하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면 많은 분이 스스로를 먼저 탓하곤 해요.

다들 멀쩡한데 나만 왜 이렇게 늘어질까.

하지만 이 질문은 방향이 조금 어긋나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빛의 양과 기온에 맞춰 잠과 식욕, 기운을 조절하거든요. 계절이 바뀌면 그 조절도 다시 맞춰야 하니 에너지가 드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흐트러진 생활 리듬을 되돌리는 방법은 연휴 뒤 일상 복귀를 다룬 글에서도 함께 살펴볼 수 있어요.

계절을 타는 마음에 붙은 이름

그렇다면 계절을 탄다는 건 무엇일까요? 정신의학자 노먼 로젠탈(Norman Rosenthal)은 1984년 해가 짧아지는 가을과 겨울에 우울이 찾아왔다가 봄과 여름이면 가라앉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고했습니다.¹ 이 패턴에 붙은 이름이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예요. 잠이 늘고, 단 음식이 당기고, 기운이 떨어지는 모습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말이 좀 어렵죠? 쉽게 말하면 달력에 맞춰 마음의 날씨가 되풀이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아요.

중요한 건 그다음 이야기입니다. 이후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계절에 따라 기분과 행동이 달라지는 경험은 꽤 흔했고, 진단 기준에 못 미치는 가벼운 형태로 겪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² 계절을 타는 마음은 있다와 없다로 딱 나뉘기보다 옅고 짙은 정도의 차이에 가까울 수 있거든요. 그러니 이 이름은 딱지를 붙이는 말이 아니라, 내가 유별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말로 쓰였으면 합니다.

가벼운 처짐과 살펴볼 신호 사이

어떤 분은 가을이면 며칠 늘어지다가 햇볕 좋은 주말 한 번에 기운을 되찾아요. 반대로 어떤 분은 몇 주째 잠과 식욕이 흔들리고, 해야 할 일을 해내기 어려울 만큼 가라앉기도 하죠. 우울의 정도를 살필 때 전문가는 기분만 보지 않고 잠, 식욕, 기운, 일과 흥미처럼 몸과 생활의 여러 영역을 함께 봅니다.³ 기분 하나만으로 나를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해요.

스스로 살펴볼 만한 신호는 이렇습니다. 가라앉은 기분이 몇 주씩 거의 매일 이어지는지, 좋아하던 일에서 즐거움이 사라졌는지, 일상을 꾸리기가 눈에 띄게 어려워졌는지예요. 이런 신호가 겹친다면 혼자 버티기보다 전문가와 대화해볼 영역일 수 있습니다. 특히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면 망설이지 말고 곁의 사람이나 자살예방상담전화(109)에 먼저 알려주세요.

허무함 아래 비어 있는 것

상담실에서 만난 한 분은 가을만 되면 퇴근 후 불 꺼진 방에 누워 휴대폰만 넘긴다고 했습니다. "여름엔 뭐라도 했는데 지금은 다 의미 없게 느껴져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의 가을에는 두 가지가 함께 줄어 있었어요. 저녁마다 나가던 산책 모임이 날씨 탓에 끊겼고, 일이 바빠지면서 스스로 고른 일정이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겁니다. "제가 게을러진 줄만 알았어요." 그 말을 하며 그분은 조금 웃으셨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느낌,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느낌,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채워질 때 활력과 안녕감이 커집니다.⁴ 허무함은 때로 이 세 가지가 계절과 함께 조용히 빠져나간 자리에서 올라오곤 해요. 그래서 이 시기의 돌봄은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일보다, 비어 있는 자리를 작게 다시 채우는 일에 가깝습니다.

작게 해낸 일이 쌓이는 하루

기운이 없을 때 우리는 기분이 나아지면 움직이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우울감을 다룬 여러 연구를 모아 분석한 결과, 기분을 기다리기보다 작은 활동을 먼저 계획하고 해보는 방식이 우울감을 줄이는 데 효과를 보였습니다.⁵ 작게라도 직접 해낸 경험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키우는 가장 든든한 재료가 되고요.⁶ 그래서 세 가지를 제안해봅니다.

하나, 아침 햇빛을 잠깐이라도 쬐어보는 것입니다. 계절성 우울을 다룬 연구들을 모아 분석한 결과 밝은 빛에 규칙적으로 노출되는 방법이 증상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었습니다.⁷ 연구에서는 전문 장비를 썼지만, 일상에서는 출근길 한 정거장을 걸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볼 수 있어요.

둘, 하루에 스스로 고른 일 하나를 정해보는 것입니다. 화분에 물 주기, 좋아하는 차 한 잔 우리기처럼 작아도 괜찮아요. 해낸 뒤에 '오늘 이건 했네' 하고 한 번 알아봐주는 것까지가 한 세트예요.

셋, 끊긴 연결 하나를 다시 이어보는 것입니다. 여름에 자주 보던 사람에게 짧은 안부를 보내거나, 실내에서 함께할 수 있는 약속을 하나 잡아보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마무리하며

가을에 마음이 처지는 건 여러분이 약해서가 아니라 바뀐 계절에 맞추느라 몸과 마음이 애쓰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해가 짧아지면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이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잘 버티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먼저 말해주려 합니다. 이 계절을 지나는 방법에 정답은 없지만, 오늘 해낸 작은 일 하나를 알아봐주는 데서 시작해볼 수 있어요. 가라앉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혼자 짊어지지 말고 함께 천천히 이야기 나눠봐요.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참고문헌

  1. Rosenthal, N. E., Sack, D. A., Gillin, J. C., Lewy, A. J., Goodwin, F. K., Davenport, Y., Mueller, P. S., Newsome, D. A., & Wehr, T. A. (1984). Seasonal affective disorder: A description of the syndrome and preliminary findings with light therapy.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41(1), 72–80. https://doi.org/10.1001/archpsyc.1984.01790120076010
  2. Kasper, S., Wehr, T. A., Bartko, J. J., Gaist, P. A., & Rosenthal, N. E. (1989). Epidemiological findings of seasonal changes in mood and behavior: A telephone survey of Montgomery County, Maryland.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46(9), 823–833. https://doi.org/10.1001/archpsyc.1989.01810090065010
  3. Hamilton, M. (1960). A rating scale for depression. Journal of Neurology, Neurosurgery, and Psychiatry, 23(1), 56–62. https://doi.org/10.1136/jnnp.23.1.56
  4. 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78. https://doi.org/10.1037/0003-066X.55.1.68
  5. Cuijpers, P., van Straten, A., & Warmerdam, L. (2007). Behavioral activation treatments of depression: A meta-analysis. Clinical Psychology Review, 27(3), 318–326. https://doi.org/10.1016/j.cpr.2006.11.001
  6. Bandura, A. (1982). Self-efficacy mechanism in human agency. American Psychologist, 37(2), 122–147. https://doi.org/10.1037/0003-066X.37.2.122
  7. Golden, R. N., Gaynes, B. N., Ekstrom, R. D., Hamer, R. M., Jacobsen, F. M., Suppes, T., Wisner, K. L., & Nemeroff, C. B. (2005). The efficacy of light therapy in the treatment of mood disorders: A review and meta-analysis of the evidence.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162(4), 656–662. https://doi.org/10.1176/appi.ajp.162.4.656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상담사와 함께 정리해보세요.


본 글은 정보 제공 및 교육 목적입니다. 개별 사례의 의학적·심리학적 진단 또는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구체 상황은 전문가의 직접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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