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말은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이 미처 말로 옮기지 못한 것을 몸이 대신 말하고 있는 중일 수 있습니다.
병원을 여러 곳 돌고 나서야 이너프심리상담센터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두통, 어지럼, 명치의 통증, 쉽게 가시지 않는 피로. 증상은 이렇게 또렷한데 검사 결과지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픈 건 그대로인데 아프다고 말할 근거만 사라져버리니까요.
이 글에서는 검사에 잡히지 않는 통증이 왜 생기는지, 감정을 말로 옮기는 일이 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오늘부터 스스로 살펴볼 만한 신호는 무엇인지 차근차근 다루겠습니다.
검사지에 나오지 않는 통증
"이상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뒤에 오히려 마음이 복잡해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다행이라는 안도와 그럼 이건 뭐냐는 당황이 동시에 밀려오거든요. 주변에서 스트레스인가 보다라는 말을 들으면 위로가 되기보다 내 아픔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한 미국 연구팀이 1989년에 발표한 조사가 있습니다. 외래를 찾은 환자 1,000명의 진료 기록을 3년에 걸쳐 살펴, 가슴 통증이나 피로, 어지럼처럼 사람들이 흔히 호소하는 열네 가지 증상의 원인을 추적한 연구예요.¹ 그 증상들 가운데 몸에서 기질적인 원인이 확인된 경우는 16%였습니다. 나머지는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 채 남았고요.
이 숫자는 나머지가 전부 마음의 문제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검사 장비가 몸이라는 집의 한 층만 비추고 있다는 뜻에 가까워요. 1970년대 후반에 한 의학자는 질병을 몸의 고장으로만 설명하는 틀이 너무 좁다고 지적하면서, 생물학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과 사회적 상황이 함께 맞물려 통증을 만든다는 관점을 제안했습니다.² 지금은 여러 진료 현장에서 기본 전제로 받아들여지는 관점입니다. 통증이 실재하는가와 검사에 잡히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라는 이야기죠.
감정을 말로 옮기기 어려울 때
상담을 하다보면요. 몸이 아파서 오신 분께 요즘 마음은 어떠시냐고 물으면 한참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가 났는지 서운했는지를 여쭤도 답답하다는 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거예요. 감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본 경험이 적어서 그렇습니다.
이런 특성을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 인데요. 말이 좀 어렵죠? 쉽게 설명하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말로 옮기는 통로가 좁아진 상태를 뜻합니다. 정신과 의사 피터 시프네오스(Peter Sifneos)가 1973년에 이 개념을 제안하면서, 몸의 증상을 주로 호소하는 환자들에게서 이런 특성이 두드러진다고 보고했어요.³
어떤 분은 속상한 일이 있으면 곧바로 알아차리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습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속상하다는 자각 자체가 늦어요. 며칠 뒤에 목이 뻣뻣하고 소화가 안 되는 것으로 먼저 알게 되죠. 후자가 더 약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감정을 드러내면 곤란해지는 환경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자연히 그쪽 감각이 무뎌지거든요.
몇 달째 두통과 어지럼이 이어져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은 분이 상담실을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웬만해서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분이었어요. 그분은 첫 회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예민한 건가 싶어서 이제는 아프다는 말도 못 하겠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통증보다도 아프다고 말할 자리를 잃은 시간이 더 오래되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는 동안 몸에서 벌어지는 일
감정을 누르면 그 감정도 함께 작아질 것 같지만 몸의 반응은 조금 다릅니다. 한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불쾌한 영상을 보여주면서 한 집단에게만 표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요청했습니다. 표정을 숨긴 집단은 겉으로는 훨씬 담담해 보였지만 심혈관계 각성 지표는 오히려 더 높게 나타났어요.⁴ 겉의 고요함을 유지하는 데 몸이 따로 힘을 쓰고 있었던 겁니다.
문을 손으로 밀어 닫아본 적 있으시죠. 문이 닫혀 있는 동안에도 미는 힘은 계속 들어갑니다. 감정을 눌러두는 일도 비슷해요. 눌린 상태가 유지되는 내내 몸은 긴장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 긴장이 하루 이틀이면 회복되지만 몇 달과 몇 년이 되면 어깨나 턱이나 위장처럼 각자 약한 자리에 자국이 남습니다.
명치가 조이는 느낌으로 찾아온 다른 분은 상담 초반에 회사 이야기를 아주 담담하게 했습니다. 부당한 일을 겪은 날의 이야기였는데 표정이 거의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날 어떤 마음이었냐고 여쭙자 그분은 잠시 생각하다가 "화가 났다기보다는 그냥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라고 답했습니다. 몇 회기가 지나 그날의 억울함에 이름이 붙기 시작하자, 명치의 조임을 호소하는 날도 조금씩 줄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읽는 연습
이렇게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했다면, 이제 그 신호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여기서 드리고 싶은 건 해결책이 아니라 관찰의 방향입니다. 몸의 통증을 마음의 문제로 바꿔 부르자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병원 진료는 계속 받으시되, 그 옆에 마음을 살피는 자리를 하나 더 두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세 가지를 살펴보세요.
하나, 증상이 심해지는 때를 기록해보세요. 요일과 시간, 그 무렵 만난 사람과 상황을 한 줄로만 적어도 충분합니다. 몇 주가 쌓이면 통증이 무작위가 아니라 특정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게 보이기도 해요.
둘,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연습을 해보세요. 답답하다는 말이 서운함인지 억울함인지 두려움인지 화인지 한 번만 더 들여다보는 겁니다. 이름이 붙는 순간 감정은 다루기가 조금 수월해집니다.
셋, 마음에 걸린 일을 글로 옮겨보세요.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마음에 걸린 경험과 그때의 감정을 나흘간 짧게 쓰게 했는데, 그 뒤 몇 달 동안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⁵ 잘 쓸 필요는 없어요. 누구에게 보여줄 글도 아니고요.
이렇게 해봐도 통증이 그대로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전문가와 함께 살펴볼 영역일 수 있어요. 몸의 증상을 오래 겪어온 분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들을 모아 검토한 결과, 심리치료가 증상의 강도와 일상의 불편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쌓여 있습니다.⁶ 혼자 견디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뜻입니다.
마무리하며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결과는 아픔이 없다는 증명이 아닙니다. 지금 쓰는 도구로는 원인이 보이지 않았다는 기록일 뿐이에요. 그러니 스스로에게 예민하다는 말을 먼저 붙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몸이 그렇게까지 소리를 낼 정도라면 그동안 참아온 몫이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니까요.
감정을 알아차리는 일도 근력과 비슷합니다. 오래 쓰지 않았다면 처음에는 잘 잡히지 않는 게 당연해요. 오늘 하루 어떤 순간에 어깨가 굳었는지 한 번만 떠올려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시작입니다. 애쓰며 버텨온 시간을 스스로 인정해주는 일이 그 첫걸음이 되기도 합니다.
참고문헌
- Kroenke, K., & Mangelsdorff, A. D. (1989). Common symptoms in ambulatory care: Incidence, evaluation, therapy, and outcome. The American Journal of Medicine, 86(3), 262-266. https://doi.org/10.1016/0002-9343(89)90293-3
- Engel, G. L. (1977). The need for a new medical model: A challenge for biomedicine. Science, 196(4286), 129-136. https://doi.org/10.1126/science.847460
- Sifneos, P. E. (1973). The prevalence of 'alexithymic' characteristics in psychosomatic patients. Psychotherapy and Psychosomatics, 22(2), 255-262. https://doi.org/10.1159/000286529
- Gross, J. J., & Levenson, R. W. (1997). Hiding feelings: The acute effects of inhibiting negative and positive emotion. Journal of Abnormal Psychology, 106(1), 95-103. https://doi.org/10.1037/0021-843X.106.1.95
- Pennebaker, J. W., & Beall, S. K. (1986). Confronting a traumatic event: Toward an understanding of inhibition and disease. Journal of Abnormal Psychology, 95(3), 274-281. https://doi.org/10.1037/0021-843X.95.3.274
- Kroenke, K. (2007). Efficacy of treatment for somatoform disorders: A review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Psychosomatic Medicine, 69(9), 881-888. https://doi.org/10.1097/PSY.0b013e31815b00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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