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 문 앞에서 오래 망설이는 것은 약해서가 아닙니다. 그 시간은 스스로를 지키며 버텨온 시간이고, 망설이면서도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이미 한 걸음입니다.
상담 예약 페이지를 열었다가 그냥 닫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고 몇 달을 그대로 흘려보낸 분도 계실 거예요. 이너프심리상담센터에서 첫 상담을 시작할 때에도 오래 고민하다 연락했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자주 만납니다. 그 망설임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부끄러워할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상담실 문을 열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그 시간 동안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망설임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차근차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문턱 앞에서 흘러간 시간
상담을 하다 보면 첫 만남에서 '언제부터 힘드셨어요?'라고 여쭈었을 때 몇 달이 아니라 몇 년 전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닙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에서 성인 9,282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전국 규모 조사에서는, 어려움이 처음 시작된 뒤 결국 전문가를 찾은 사람들이 처음 전문적인 도움과 닿기까지 흔히 걸린 기간이 어려움의 종류에 따라 달랐습니다. 우울처럼 기분과 관련된 어려움에서는 6년에서 8년, 불안과 관련된 어려움에서는 9년에서 23년이었어요.¹ 문을 열기까지 오래 걸리는 일이 생각보다 흔하다는 뜻입니다.
센터를 찾은 한 분은 첫 회기에 휴대폰 메모장을 보여주셨습니다. 거기에는 상담센터 이름 몇 개와 함께 2년 전 날짜가 적혀 있었어요. "그때부터 알아보기만 했어요. 막상 전화하려면 내가 이 정도로 유난을 떠는 건가 싶어서요." 그분은 그 2년을 게으름의 증거처럼 말했지만 제게는 다르게 들렸습니다. 매일 출근하고 가족을 챙기면서 혼자 그 무게를 견뎌온 시간이었으니까요.
발걸음을 붙잡는 마음의 이유
그렇다면 도움 추구(Help-seeking), 이 말은 무엇일까요?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주변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손을 내미는 일을 말합니다. 말은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꽤 여러 개의 마음의 관문을 지나야 하는 과정이에요. 젊은 층의 경험을 다룬 연구들을 모아 살펴본 한 체계적 고찰은 사람들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를 여러 갈래로 정리했습니다.² 제가 상담실에서 듣는 이야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대표적인 것을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하나, 창피함과 남의 시선에 대한 걱정입니다. 상담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마음이 움츠러드는 거예요.
둘, 지금 내 상태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힘든 건 분명한데 이것이 도움을 청할 만한 일인지 스스로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 혼자 해결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스스로 버텨온 사람일수록 남에게 기대는 일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관련 연구를 폭넓게 모은 또 다른 체계적 고찰에서도 확인됐습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편견이 도움을 청하는 행동을 작거나 중간 정도의 크기로 가로막는다는 결과였어요.³ 그러니 망설임은 개인의 성격 탓이라기보다 사회가 함께 만든 문턱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대화
망설이는 동안 머릿속은 대개 조용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다들 견디잖아', '말해봤자 달라질까', '그래도 한번 가볼까' 같은 대화가 밤마다 되풀이되죠. 반복해서 곱씹는 생각에 관한 연구들을 정리한 한 논문은 부정적인 생각을 되풀이하는 일이 우울한 기분을 더 깊어지게 하고,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며,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을 방해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⁴ 생각을 많이 한다고 답이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같은 자리를 빙빙 돌게 되는 셈이에요.
어떤 분은 고민이 깊어질수록 더 신중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 일단 누군가에게 소리 내어 말해보는 쪽을 택하죠.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같은 질문이 몇 달째 머릿속에서만 돌고 있다면, 그 질문을 밖으로 꺼내 다른 사람과 함께 바라볼 때가 되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다 타버리기 전에 두드리는 문
많은 분들이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순간에야 비로소 상담실을 찾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 에너지가 거의 남지 않은 상태에서는 전화 한 통, 문자 하나를 보내는 일조차 큰 산처럼 느껴지곤 하거든요. 그래서 문을 두드리는 시점이 늦어질수록 그 문은 더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상담은 완전히 무너진 사람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에요. 조금 지쳤다고 느끼는 지금도 충분히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는 때입니다.
망설임 속에 숨은 나를 지키려는 마음
여기서 한 가지를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망설임을 무조건 없애야 할 장애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일 앞에서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그동안 스스로를 지켜온 방식이기도 하거든요. 상담사인 저도 새로운 사람 앞에서 속마음을 꺼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망설여진다면 그 마음을 억지로 밀어내기보다 '내가 이만큼 조심스럽구나' 하고 알아봐 주세요. 준비가 될 때까지 첫 상담 전에 많이 묻는 질문을 먼저 읽어 보거나 궁금한 점 하나만 문의해보는 것도 충분한 시작이에요.
마무리하며
상담실 문을 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몇 주 만에 오는 분도 있고, 몇 년을 돌아서 오는 분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그 시간 동안 여러분은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매일을 살아내며 자기 몫의 무게를 견뎌왔습니다. 망설였다는 사실보다 그럼에도 이 글을 끝까지 읽고 계신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그동안 참 애쓰셨어요. 문 앞에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잠시 기억해보세요.
참고문헌
- Wang, P. S., Berglund, P., Olfson, M., Pincus, H. A., Wells, K. B., & Kessler, R. C. (2005). Failure and delay in initial treatment contact after first onset of mental disorders in the National Comorbidity Survey Replication.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62(6), 603-613. https://doi.org/10.1001/archpsyc.62.6.603
- Gulliver, A., Griffiths, K. M., & Christensen, H. (2010). Perceived barriers and facilitators to mental health help-seeking in young people: A systematic review. BMC Psychiatry, 10, 113. https://doi.org/10.1186/1471-244X-10-113
- Clement, S., Schauman, O., Graham, T., Maggioni, F., Evans-Lacko, S., Bezborodovs, N., Morgan, C., Rüsch, N., Brown, J. S. L., & Thornicroft, G. (2015). What is the impact of mental health-related stigma on help-seeking? A systematic review of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studies. Psychological Medicine, 45(1), 11-27. https://doi.org/10.1017/S0033291714000129
- Nolen-Hoeksema, S., Wisco, B. E., & Lyubomirsky, S. (2008). Rethinking rumination.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3(5), 400-424. https://doi.org/10.1111/j.1745-6924.2008.00088.x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상담사와 함께 정리해보세요.
본 글은 정보 제공 및 교육 목적입니다. 개별 사례의 의학적·심리학적 진단 또는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구체 상황은 전문가의 직접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