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몸의 상처가 새살로 아물듯, 돌보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회복하는 힘은 특별한 사람만의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조금씩 기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에 가깝습니다.
상담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이 상처는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거겠죠." 큰 이별이나 갑작스러운 사고, 오래 쌓인 관계의 아픔을 겪은 뒤에 이렇게 말하는 분이 많아요. 마음이 다치면 몸의 상처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언제 나을지 가늠하기 어렵거든요. 이너프심리상담센터에서 만나는 분들도 처음에는 비슷한 두려움을 안고 오십니다.
이 글에서는 마음의 상처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부터, 다시 일어서는 힘인 회복탄력성이 무엇인지, 회복을 돕는 자원과 스스로를 돌보는 법까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아물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의 상처
마음이 크게 다치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아무렇지 않던 일에도 쉽게 무너지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버거워지죠. 그럴 때 우리는 흔히 '나만 이렇게 약한가' 하고 스스로를 탓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이 힘든 사람이 나만은 아닙니다. 2021년 보건복지부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전국 성인 5,511명을 조사한 결과, 성인의 27.8%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¹ 넷 중 한 명이 넘는 셈이에요. 다만 그중 실제로 도움을 받아본 사람은 훨씬 적었습니다.
상처가 있다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돌보지 못한 채 혼자 견디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더 아플 뿐입니다. 넘어진 자리에 손을 대는 일은 약함이 아니라,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힘, 회복탄력성
심리학에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은 무엇일까요? 쉽게 말하면, 크게 흔들린 뒤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마음의 탄력을 뜻해요. 고무줄을 당겼다 놓으면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듯, 사람의 마음에도 그런 힘이 있다는 겁니다.
이 힘을 오래 연구한 정신의학자 코너(Kathryn Connor)는 2003년에 동료와 함께, 회복하는 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돕는 도구를 만들었습니다.² 그가 주목한 건, 회복탄력성이 태어날 때 정해지는 재능이 아니라 살아가며 길러지는 특성이라는 점이었어요.
말이 좀 어렵죠? 쉽게 설명하면, 회복하는 힘은 근육과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튼튼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조금씩 쓰고 돌보면 단단해집니다. 지금 회복이 더디게 느껴진다면, 그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그 힘을 써볼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회복을 돕는 마음의 자원
혼자 애쓴다고 해서 모든 상처가 아무는 것은 아닙니다. 상담을 하다보면요, 회복이 조금씩 이루어지는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보입니다.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감각, 그리고 곁에 기댈 사람이 있다는 감각이에요.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마음,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은 마음이라는 기본 욕구가 있습니다.³ 이 세 가지가 조금씩 채워질 때 우리는 안에서부터 회복할 힘을 얻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내가 정해서 해냈다는 경험이 쌓이면, 무너졌던 자리에 다시 기둥이 세워지거든요.
또 다른 연구에서는 가족과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다고 느끼는 지지가 마음 회복에 큰 영향을 준다고 봤어요.⁴ 여기서 중요한 건 실제로 받은 도움의 양보다, '내가 힘들 때 기댈 곳이 있다'는 느낌 자체입니다. 그 느낌 하나가 어두운 밤을 건너게 하는 등불이 되곤 합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도움을 청하는 일을 유독 어려워합니다. 폐를 끼칠까 봐, 약해 보일까 봐 혼자 삭이죠. 그런 분께는 손을 내미는 연습부터 함께해봅니다. 기대는 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회복의 재료를 늘리는 일이니까요.
스스로를 살피고 돌보는 법
그렇다면 오늘부터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요. 세 가지를 나눠 말씀드릴게요.
하나, 지금 내 마음 상태를 가만히 살펴보는 일입니다. 우울감이나 불안을 스스로 점검해볼 수 있는 자기보고식 질문지들이 있는데⁵, 이런 도구는 진단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거울에 가깝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알면, 어디로 갈지도 조금 보이거든요.
둘, 작은 일상의 리듬을 지키는 일이에요. 제때 자고, 한 끼라도 챙겨 먹고, 잠깐이라도 걷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든든한 뿌리가 됩니다.
셋, 혼자 감당하기 버겁다면 전문가와 이야기 나눠보는 일입니다. 앞서 본 조사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도움을 받은 비율은 낮았어요. 상담은 특별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돌봄입니다.
센터를 찾은 한 분은 오래 마음을 닫고 지내다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을 누군가에게 해도 된다는 걸 몰랐어요." 그 한마디를 꺼낸 순간부터, 아물지 않을 것 같던 상처에 천천히 새살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마무리하며
마음의 상처는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흉터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만큼 견뎌왔다는 흔적이 될 수는 있어요. 회복은 상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다시 걸어가는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오늘 당장 다 나으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회복하는 힘은 근력처럼 천천히 자라니까요.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이미 회복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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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2021).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 보고서. 보건복지부. https://www.mohw.go.kr/board.es?mid=a10411010100&bid=0019&act=view&list_no=369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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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or, K. M., & Davidson, J. R. T. (2003). Development of a new resilience scale: The Connor-Davidson Resilience Scale (CD-RISC). Depression and Anxiety, 18(2), 76-82. https://doi.org/10.1002/da.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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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78. https://doi.org/10.1037/0003-066X.55.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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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met, G. D., Dahlem, N. W., Zimet, S. G., & Farley, G. K. (1988). The Multidimensional Scale of Perceived Social Support. Journal of Personality Assessment, 52(1), 30-41. https://doi.org/10.1207/s15327752jpa5201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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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loff, L. S. (1977). The CES-D Scale: A self-report depression scale for research in the general population. Applied Psychological Measurement, 1(3), 385-401. https://doi.org/10.1177/0146621677001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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